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닝 폰 트레슈코프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아돌프 히틀러]]에 대해 반감을 품은 인물들이 대부분 귀족 출신이듯 트레슈코프 또한 프로이센의 브란덴부르크에서 태어난 귀족가문의 자제였다. 아버지는 [[빌헬름 1세]]의 대관식에도 참여한 프로이센 육군 [[기병]] 장군이었으며, 어머니는 프로이센 교육부서의 관료였다.그의 아내는 [[독일 제국군]]의 육군 보병대장이었던 [[에리히 폰 팔켄하인]]의 딸이었다. [[제1차 세계 대전]]에는 [[마른 전투#s-3|2차 마른 전투(Battle of the Marne)]]에서 ~~독일은 패배했지만~~ 공훈을 인정받아 [[철십자 훈장#s-5.1.3|2등급 철십자 훈장]]을 수여받았다. 이후 육군을 잠시 떠났다가 [[파울 폰 힌덴부르크|힌덴부르크]] 원수의 추천으로 다시 복귀하였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에는 A집단군의 [[게르트 폰 룬트슈테트|룬트슈테트]] (당시)상급대장과 [[에리히 폰 만슈타인|만슈타인]] 중장의 참모장교로 배속받아 [[낫질 작전]] 입안 및 건의, 실행 등을 보좌하였다. 만슈타인 장군의 낫질 작전이 육군최고사령부(OKH)에 의해서 거절되었지만 트레슈코프가 세계 1차대전 시절 9보병연대 동료였던 [[루돌프 슈문트]] 대령이 히틀러의 군사고문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레슈코프가 직접 슈문트에게 작계 내용을 전달하여서 ~~지휘체계를 무시하고 ~~히틀러에게 보고될 수 있었고 [[에리히 폰 만슈타인#s-2.3|결국 승인을 받게 될 수 있었다.]] 1941~1943년 동안 [[바르바로사 작전]]에 투입되어 중부집단군 사령관 [[페도어 폰 보크|보크]][* 트레슈코프는 보크의 조카였다.] 육군 원수(이후 [[귄터 폰 클루게|클루게]] 육군 원수로 교체됨)의 참모진에 배속되었다. 나중에는 [[우크라이나]]의 [[드니프로 강|드네프르 강]]의 수비를 맡는 육군 제442[[척탄병]][[연대(군대)|연대]][[연대장|장]]으로 발령받았고 1943년에 육군 제2[[군단]]의 [[참모장]]으로 근무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